상실슬픔의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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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4-19 09:35 조회363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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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상실슬픔의 치유
1. 상실로서의 죽음
인생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다. 사람이든 물질이든 누군가를 만나고 무엇인가를 취하게 되며, 그렇게 만난 것들은 반드시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있다.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인연이라는 말을 쓴다. 인연에는 선연과 악연이 있으니 만남후의 이별에는 선연과의 헤어짐에서 오는 슬픔도 상실의 과정이고, 악연과의 헤어짐에서 오는 후련함도 상실의 한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돈을 떠나보내면 슬픔에 젖고 아이를 잃은 엄마는 비통함에 어쩔 줄 모른다. 이와 같이 상실은 우리의 삶과 정신에 큰 영향을 준다. 상실의 마지막은 죽음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순간들이 세상의 모든 것과 작별하는 순간이 죽음의 상실이다.
과거의 평균수명을 보면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1800년대의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30세를 넘기지 못하였다. 그것은 신생아의 사망률이 높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기도 하지만 의학적인 발전이 없던 당시에는 작은 병에도 생명을 잃어버리기 쉬웠기 때문에 일부를 제외하고는 장수를 누리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60이 넘으면 환갑이라고 하여 장수의 기준으로 삼고 잔치를 하였다. 회갑잔치는 육십갑자의 한 갑을 넘기는 것으로 동양의 사상으로 보면 하나의 전체를 넘긴 것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현대의 인간의 수명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환갑잔치가 무시된 것은 오래전의 일이고 이제는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80대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며, 노인정에 가면 70세는 젊은 나이 축에 속한다고 한다. 인간의 수명이 이렇게 늘어나는 것은 의학의 발달과 과학의 발달로 건강에 대한 많은 정보가 제공되고, 사전 검사를 통한 질병의 예방과 과학적인 건강관리에 기인한다. 영생을 하고자한다면 욕심에는 끝이 없지만, 인간의 수명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삶의 질이다. 현실적으로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곳에 다니고 잘 노는 것들이 누구나 누리고자 하는 삶이 된 것이다. 이렇게 길어진 수명 탓에 인간이 추구하는 것도 보다 다양해지고 더욱 넓어졌다.
문제는 길어진 수명과 길어진 삶으로 인해 청년기나 장년기가 늘어났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조금 늘어난 부분도 있지만, 결국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다는 것은 노년의 삶이 그만큼 길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년의 삶이 늘어나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에 따른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많이 생겼다. 노년기의 삶은 생각하기에 따라 피곤하기도 하고, 무의미하기도 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노년이 되면 죽음에 이르게 될 시간이 가까이 온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년기에는 죽음을 보는 생각이 달라진다.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바라보는 현실적인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년에는 죽음을 생각하고 삶을 되돌아보고 남아있는 삶의 소중함을 알아 마지막 생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정리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게 된다. 그저 나이 탓 만하며 우물쭈물 하다보면 세월은 쏜살같이 가버린다. 삶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고 죽음은 새로운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제는 오늘 하루를 살더라도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사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삶을 비통하게 만들거나 무의미하고 허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유한함을 깨닫게 되면 비로소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듯이, 삶의 유한성을 느끼게 되면 남아 있는 시간과 생명이 소중하게 생각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남은 시간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환희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행복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2. 죽음에 이르는 심리변화
사람이 암 등의 불치병에 걸리든지, 병에서 회복할 수 없는 가망 없는 상태에서 죽어 가면서 겪게 되는 마음의 변화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물론 사람들 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스위스 출신의 정신과 의사인 엘리자베스(Elisabeth Kübler-Ross 1926~2004)는 500명 정도의 불치병 환자와 이야기를 나눈 후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다섯 단계를 제시하였다. 이것은 불치병으로 인한 자신의 죽음뿐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의 임박한 사별을 바라보는 이들의 반응이기도 하다. 어느 날 당신에게 시한부라는 진단이 내려진다면 이와 같은 심리변화를 겪게 된다.
첫 번째 단계는 부정(denial)이다. 불치병으로 사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럴 리 없다거나 결과가 잘못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죽음은 생소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불멸(immortality)을 믿고, 자신에게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비현실적인 낙관론(unrealistic optimism)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는 현재 세상을 아주 값지게 살고 있으며, 어제까지도 이런 저런 일들로 바쁘게 생활하여 왔는데, 갑자기 자기에게 닥쳐온 사항이 너무도 암담하고 비참한 기분이 들어 적극적으로 그 상황을 부인하는 그런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는 분노(anger)이다. 자신의 예정된 죽음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와 격분, 질투와 원한의 감정을 경험한다. “왜 하필 나인가!”라는 생각으로 가족과 의료인, 심지어 신에게까지 화를 내거나 젊고 건강한 사람을 질투한다고 한다. 이는 환자의 감정이 투사되기 때문이다. 자기가 확실히 죽어 가고 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자기 자신이나 그 상황을 호전 시켜 주지 못하는 주위 환경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불신하고, 배척하는 단계이다.
세 번째 단계는 타협(bargaining)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죽음이 연기되기를 바란다. ‘중요한 일(아들의 결혼식 등)이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라면서 신에게 기도를 한다거나 그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했던 나쁜 일에 대하여 사과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착한 일을 하려고 하면서 어떻게든 삶을 연장시키고자 한다. 아무리 자기에게 닥친 병이 죽음에 이르는 불치병이라 하더라도 만약에 내가 그 병이 낫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런 사항이 닥치지 않도록 하겠다는 후회와 만약 병이 완쾌된다면 다시는 후회 없는 삶을 살 것이라고, 제발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만 해 달라고 의료 담당자나 신에게 매달려 흥정하는 단계이다.
네 번째 단계는 우울(depression)이다. 생명이 연장되는 일은 없으며 죽음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말수도 적어지고 면회도 사절하면서 슬퍼한다. 자기가 처한 현실에 대하여 주변 환경이나 신에게 불신의 마음과 배척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이라든지 하는 감정에 지쳐서 스스로 무너지며 자기의 죽음에 의한 소멸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마지막 단계는 인정(acceptance)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거나 앞의 네 단계를 거쳤다면 이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에는 죽음에 대하여 비교적 평화로운 마음을 가진다. 이렇게 해 보아도 저렇게 해 보아도 어떻게 하든지 자기가 현재 처해 있는 입장은 전혀 변함이 없고 오로지 죽음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인간 세상사에서 분리시켜 죽음을 위하여 준비하는 단계로 주변 정리와 평온함을 유지하려고 모든 욕망을 내려놓는 단계이다.
죽음은 누구나 외면하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실존의 문제이다. 자신의 죽음도 그렇지만,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도 그렇다. 물론 이상의 5단계가 건강한 죽음의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 선고 앞에서 심리상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예측해 볼 수는 있고, 그에 따라 적절하게 반응하고 대비할 수도 있다.
신학자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인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죽음, 고립, 삶의 의미, 자유가 그것이다. 궁극적 관심이란 우리의 삶에서 일상적인 것들을 제거하면 누구나 직면하게 되는 인간 삶의 실존문제들을 말한다. 어쩌면 죽음이 갑작스럽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늘 있는 죽음을 우리가 갑작스럽게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죽음을 자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자포 자기 한 것 같은 어두운 생활을 이어나간다면 살아 있는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언젠가는 겪게 될 죽음을 터부로서 멀리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죽음은 현재진행형이다. 살아가는 것은 또한 죽는 과정이다. 죽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순간을 보다 짙게 색칠하기 위해 말년의 시선이 필요하다. 따뜻한 가족만큼 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태주는 존재는 없는 듯하다. 가족도, 그 누구도 곁에 없는 사람일지라도 시간은 곁에 있다. 때로는 시간에게 슬픔과 괴로움을 흘려보내며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기도 한다. 우리에게 영혼이 있다면 이승은 이별뿐이지만 저승은 재회뿐이라는 것이다.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면 죽음도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알폰스 데켄은 퀴블러 로스의 5단계에 기대와 희망을 넣어 6단계로 구분하였다. 죽음에 이르는 심리변화의 단계에 있어 부인, 노여움, 타협, 우울, 수용, 기대와 희망의 6단계로 나누어진다고 보았다. 죽음이후의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기대와 희망은 죽음에 대한 부정만이 아니라 그 너머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간절함인지도 모른다.
3. 상실과 상실치유
“얻은 자는 잃을까 염려하고, 잃은 자는 다시 얻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상실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인생은 끊임없는 만남과 이별, 사랑과 슬픔의 연속이며 상실 중에서 사랑했던 사람과 죽음으로 인한 상실이 가장 큰 상처로 남는다. 상실은 ‘모두 끝났다’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는 삶’의 증거이다.
1) 상실의 다양성
⓵ 물질적 상실 – 사물이나 환경의 상실
⓶ 관계의 상실 - 이혼, 이직, 졸업, 죽음으로 인한 상실
③ 내적 심리적 상시 - 희망, 꿈이 사라지는 상실
④ 기능적 상실 – 질병 등으로 신체의 일부를 일어버리는 상실
⑤ 역할의 상실 - 해고, 은퇴, 결혼 등으로 역할이 바뀌거나 없어지는 상실
⑥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상실 – 아기와 같이 가지고 싶어도 못 가져 본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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