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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종교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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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4-19 09:05 조회3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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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규

3. 죽음의 종교적 이해

 

1. 종교적 관점에서 죽음

 

종교가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각각의 종교가 지니는 구원패러다임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보이지만, 종교가 생사를 극복하거나 초월하여 유한한 생명의 덧없음과 그 죄나 업보가 지닌 파괴성을 넘어서서 영원한 생명, 절대생명, 불생 불멸적 생명으로 고양된다는 신념을 지니는 점은 모든 종교에 공통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종교의 궁극적 목적은 죽음의 극복, 죽음에 대해 보통사람들이 지니는 두려움과 편견을 극복하여 이 세상에서의 삶을 보다 건강하고 의미 있게 살려는 목적을 지닌다. 죽음에 대하여 말하기를 회피하는 종교는 이미 종교가 아니요,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말하려는 종교는 죽음에 대하여서도 동시에 진지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 죽음을 보는 관점이 바로 죽음관이다. 그런데 이러한 죽음에 대한 생각에 따라서 내 삶이 달라진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삶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것은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삶의 바탕이 되기도 하지만, 잘못된 죽음관은 생명경시와 자살등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쉽게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올바른 죽음관을 갖기 위해서는 그동안 앞서 죽어간 많은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들의 죽음이 주는 의미와 교훈을 되새긴다면 자신의 죽음이 어떻게 되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삶을 삶답게, 어떻게 죽는 것이 죽음을 죽음답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죽음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판단하는 일보다 자신이 얼마나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하는지에 따라 삶을 고뇌하고 자신의 유한한 삶을 완성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자신의 죽음관을 통해 삶의 관점이 완성되는 것이다. 죽음을 모르고서는 진정한 삶의 완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2. 각 종교의 죽음관

 

중국의 공자는 죽음을 미경험의 영역으로 위치 지었는데, 인도의 불타는 죽음을 열반으로 보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 위한 출발점으로 생각했다. 이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희생되고, 죽어서 다시 살아났다. , 대략적으로 말해서 공자는 죽음을 불가지(不可知)의 대상으로 보고, 불타는 그것을 생의 충실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지막은 죽음이 재생에 이르기 위한 단절로 보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죽음에 대한 세 가지의 태도는 시대를 초월해서 지역을 초월해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며, 신화나 예술, 문화이나 철학 등의 각종 관념이나 발상의 모태도 되었다. 우선 대표적인 종교에서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의 전통 무속에서의 죽음의례

 

무속 죽음의례는 오랜 시간 한국사회에서 유교와 불교 등 타종교의 죽음의례와 함께 죽음의례 가운데 하나로 기능해왔다. 이런 점에서, 무속은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죽음의례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전통적 무속에서 죽음은 이승과 저승의 이원론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저승은 이승과 닮은 저승이며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세상으로 인식되며, 죽은 혼령이 정화를 거쳐 저승으로 간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성속일여의 사상과 함께 이승과 저승사이에 구천이라는 곳을 두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지 못한 혼령이 떠도는 곳이라고 하였으며 이러한 구천에 떠도는 혼령은 이승에도 영향을 주므로 혼령정화를 통해 저승으로 보내야 한다고 믿었다.

 

긴 세월 한국인의 삶과 함께 해 온 만큼 한국무속의 죽음의례에는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전통적인 죽음의 모습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통성이 그것을 존속시킨 힘이었을지 모른다. 한국무속에서 행해지는 무속 죽음의례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죽음의례의 유형만을 본다면, 무속 죽음의례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포괄적인 죽음의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유형의 죽음이나 어떤 성격의 죽음도 감당할 수 있는 다양한 죽음의례를 갖추고 있다.

 

한국무속에서는 동일한 죽음이라도 죽음 발생 이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이는 무속 죽음의례의 유형을 통해서 확인된다. 죽음 발생 이후 경과된 시간에 따라 죽음의례의 절차가 달라진다. 예컨대, 서울지역의 경우, 갓 죽은 사람을 위한 진진오기굿과 죽음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죽은 자를 위한 ‘(마른) 진오기굿이 구분된다. 당연히 굿 절차에도 차이가 있다. 이는 다른 지역 무속 죽음의례도 마찬가지이다. 죽음 발생 이후 시간에 따라 이른바 굿과 마른굿이 구분되는 것은, 한국무속에 죽음 발생 이후 시간에 따라 죽음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관념이 존재함을 말해준다. 죽음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으로 판단되는 시점은 대체로 사후 49일이나 100, 또는 3년 등으로, 넓은 의미의 탈상(脫喪)’이 기준이 된다.

무속 죽음의례는 이른바 정상적인 죽음과 비정상적인 죽음인가의 여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무속에서 정상적인 죽음과 비정상적인 죽음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것은 죽은 자의 인격이나 업적, 사회에 대한 기여 등 생전의 삶이 아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거쳐야하는 통과의례를 통과했는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등 넓은 의미의 죽음의 방식이 죽음의 성격을 결정한다. 무속의례의 기본 특징의 하나는 무당의 신내림을 매개로 신, 죽은 자, 인간이 직접적인 만남과 소통을 갖는다는 점이다. 반면 유교나 불교의례에서는 신이나 죽은 자의 구체적인 현현(顯現)을 통한 인간과의 직접적인 소통이 나타나지 않고, 간접적이고 상징적인 만남이 나타난다. 이러한 무속의례의 특징은 무속 죽음의례에도 잘 나타난다. 특히 무속 죽음의례에서는 죽은 자와의 직접적인 대화가 두드러진다. 이는 전국적인 현상으로, 죽은 자의 이야기를 듣는 의례과정은 한국무속 죽음의례의 구조적 요소의 하나이다. 한 사람이 죽었을 때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어떤 죽음도 아무리 밝고 행복한 죽음일지라도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의 바램을 해소하진 못한다. 안타깝고 아쉽지 않은 죽음은 없다는 점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의 욕구는 자연스럽고 일반적이다. 무속 죽음의례에 나타나는 무당을 통한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는 이런 자연스런 욕구를 충족시키는 의례 메카니즘이다.

 

한국무속에서 죽음이란 한 사람의 존재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변화하는 것이다. 무속에서 죽음이란 이승의 존재에서 저승의 존재로 변화하는 것이다. 무속 죽음의례에는 죽음이란 존재가 변화하여 저승의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보여주고 확인하거나, 죽은 자의 존재변화를 가능케 해 죽음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의례 절차가 두드러진다. 죽은 자의 존재변화를 확인하는 의례 절차의 예로, 말미 후 세발 심지 태워 흔적보기(서울 진오기굿), 오구가루 보기(전라도 씻김굿), 영가루치기(제주도 무혼굿), 넋일굼(동해안 오구굿), 넋올리기(전라도 씻김굿), 맑은 혼 모시기(황해도 진오기굿) 등이 있다.

 

무속 죽음의례에는 단지 죽은 자의 존재변화를 확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죽은 자의 존재를 변화시키는 기능을 하는 의례 절차도 있다. 예컨대 전라도 씻김굿의 고풀이와 씻김의 절차는 얽히고설킨 이승의 삶에 대한 미련과 한을 풀어내고 이승의 흔적을 씻어냄으로써, 죽은 자를 이승의 존재와는 다른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킨다. 죽은 자의 존재변화를 확인하고 죽은 자를 산 자의 세계인 이승에서 죽은 자의 세계인 저승으로 전이(轉移)시키는 것이 죽음의례의 일반적 과정이라고 할 때, 무속의 죽음의례는 바로 죽은 자와 산 자의 직접적인 만남과 대화라는 의례장치를 중심으로 죽은 자의 존재변화를 확인한다. 한편 죽은 자가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게 되는 산 자와의 대화에서, 죽은 자의 대화 상대는 그의 가족이다. 이는 죽은 자의 존재변화에서 가족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준다. 무속의 죽음의례는 무당의 신내림을 매개로 죽은 자와의 직접적인 대화, 그것을 통한 죽은 자와의 화해 및 죽은 자의 존재의 개별성을 확인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죽음이 발생했을 때, 죽은 자와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것은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근원적인 욕구의 하나이다. 무속 죽음의례는 그런 욕구 충족의 통로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은 유교, 불교의 죽음의례가 제공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도교의 죽음

 

도교는 자연의 모든 현상을 음·양의 두 기운이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삶이란 기가 모인 것이고 죽음은 기가 흩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은 자연의 순환작용과 변화의 과정에 불과한 것이다. 도교에서는 죽음의 극복이 정신적 초월과 수련을 통한 장생불사의 추구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장생불사란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의 양생법을 통해 기의 수련으로 수명을 보존할 수 있다는 초기 신선사상과 통한다. 신선이란 이상세계에 사는 초월자이며 사람이 신선이 되기 위해서는 불사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양생법의 발달은 인간이 노력하면 신선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을 불어 넣었다. 도교의 사상은 장자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장자(莊子)의 처()가 죽자 혜자(惠子=惠施)가 조상(弔喪)하러 갔다. 장자는 그때 두 다리를 뻗고 앉아 항아리를 두드리면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혜자가 말하였다. 그분과 함께 살았고, 자식을 길렀으며, 함께 늙었다. 그런 부인이 죽었는데 곡()을 안 하는 것도 모르겠거니와, 또 거기에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까지 부르고 있으니 너무 심하지 아니한가? 장자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그가 처음 죽었을 적에야 나라고 어찌 슬픈 느낌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가 태어나기 이전을 살펴보니 본시는 삶()이 없었던 것이었고, ()만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시 형체(形體)조차도 없었던 것이었으며, 형체만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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