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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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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4-19 09:03 조회3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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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규

2 . 죽음의 이해

 

1. 죽음의 문제

 

죽음의 문제는 우리가 항상 거부하고 꺼리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류는 사고(思考)를 하게 되면서부터 죽음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해왔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철학과 종교에 있어서 죽음의 문제는 언제나 그 핵심적인 것이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의 정보통신을 비롯하여 과학의 발달이 상상을 초월하여 소통이 원활해지고,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우주의 신비를 밝히고 있지만, 여전히 죽음의 문제는 풀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 비밀을 명확히 풀기란 영영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결국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삶속에서 죽음을 생각하거나 입에 담기조차 싫어하고 피하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왜 인간은 죽음이라는 분명한 진리 앞에서도 그것을 피하려고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화하여 왔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그 시대의 종교관이나 사회현상에 따라 변화되어 왔으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연주의적인 죽음관을 대체로 수용하고 있다. 꽃이 피면 시드는 것과 같이 인간도 태어나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연스런 이치인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의학이 발달하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예전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병이라 할지라도 현대의학은 생명의 연장이라는 새로운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생명의 연장은 죽음이 운명이 아니라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얼마든지 연장되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대에는 생명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탄생으로 인간의 노화와 관련되어진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육체의 죽음을 연장시킨 대가로 인류는 뇌사라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뇌사는 육체적으로는 살아있지만 뇌의 기능이 정지되어 인간으로서의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 살아있는데 죽은 것이고 죽은 것인데 살아있는 묘한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장기이식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였다. 과연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육체의 생명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생각이나 사고가 살아있어야 하는 것인가?

 

인간은 누구도 죽음을 거부할 수 없으며, 모든 생명은 예외 없이 죽음의 법칙아래 놓여있다. 죽음은 나이순으로 맞이하는 것도 아니며 노인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영원히 사는 것으로 착각하며 삶의 의미도 모르고 죽음에 대한 대비도 없이 그저 현실을 살아가는데 급급하여 살아간다. 살아있는 누구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병원 응급실에 하룻밤만 앉아 있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자신이 편안히 자고 있는 그 많은 날들 동안에도 병원응급실에는 급하게 실려 오는 환자들로 넘쳐난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며 죽음에 대해 떠올리기조차 싫어했던 사람들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것이다. 과연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의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천수를 누리고 기력이 쇠진하여 저절로 여러 기능이 멈추는 자연사가 있는가 하면, 아직 창창한 나이에 뜻하지 않은 원인이 생겨 죽음을 맞는 우연사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예로부터 오래 사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삼았고,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考終命)을 오복의 하나로 꼽았다.

인간을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라 규정한 철학자도 있고, “산다는 것은 무덤을 향하여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말한 소설가도 있다.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을 돌려라. 그리고 미구에 죽을 것이라 생각하라.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가를 그대가 아무리 번민할 때라도 밤이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번민은 곧 해결될 것이다. 그리하여 의무란 무엇인가, 인간의 소원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가가 곧 명백해질 것이다. 아아, 명성을 떨쳤던 사람도 죽고 나면 이렇게 빨리 잊혀지는 것일까?” 그리스의 비극 시인인 소포클레스(Sophokles)는 이렇게 죽음을 노래하였다.

 

어찌되었든 사람은 죽지 않으면 안 되고 단 한번 혼자서 죽는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끝맺음이다. 누구도 피하지 못하고 거부하지 못하며 전신으로 맞아들여야 한다. 죽음에 대한 인식을 보면 한국인은 무척 죽음을 외면하려 든다. 그래서 말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가난에 찌들어도 천대를 받아도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좋다. 죽음은 싫다. 삶에 강렬한 애착을 지닌다. 죽음을 재난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렵다. 죽음은 휴식이 아니라 새로운 공포이고 재앙이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오복 가운데 오래 사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그저 오래 살고 싶어 한다. 아기를 낳았을 때 금줄을 치는 것이나, 돌을 맞았을 때 실을 안겨 주는 것이나, 모두 인생의 마디마디에 오래 살아라하고 기원하는 뜻을 담는 것이다. 새해를 맞아 세배를 드려도 만수무강하십시오!” 하고, 젊은이의 이러한 축수(祝壽)에 어른은 명복(命福) 많이 받아라하고 덕담을 내린다. 모두 오래 살고 싶은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굳이 외면하고 싶지만 가까이 있음을 안다. ‘저승 백년보다 이승 일 년이 낫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저승길이 대문 밖인 것이다. 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복의 마지막은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하는데 주로 죽음의 현상학적인 간접적 체험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죽음은 그 누구나 모든 사람이 맞이해야 하면서도 돌연이 예고 없이 찾아 올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이 가까워 오면 모든 과정이 의사, 장의사, 성직자등 전문인들의 손에 넘어가 버리고 인간의 가장 중요한 통과제의로서의 죽음이 낯선 사람의 손에 양도되어 버린다.

둘째, 죽음은 집단학살의 경우일지라도 죽는 순간만은 홀로 맞이해야 하는 실존적 사건이다.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나 남편이나 아내일지라도 대신 죽어줄 수 없고 함께 죽어갈 수 없다. 죽음에서 인간은 홀로되는 엄숙한 시간을 맞는다.

셋째, 죽음이 주는 아픔은 죽음 그 자체라기보다는 모든 의미 있는 관계와 성취물과 삶의 의미연관구조를 일시에 잃어버리고 해체당하는 의미상실의 고통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의 아픔, 혼신의 힘을 쏟았던 일로부터 단절되고 쌓아온 모든 생의 업적으로부터 분리되는 아픔이다. 죽음의 아픔은 곧 근원적 소외가 주는 아픔이고 고통이다.

넷째, 죽음의 두려움은 질서와 조화와 아름다움을 지녔던 구체적 몸으로서의 생명이 추하게 먼지와 물로 분해되고 해체된다는 사실의 두려움에 대한 저항감이 무의식 속에서 자리잡고 있다. 죽음은 매우 비인간적일 수 있는 현상을 내보이면서, 인간성을 모독하고 파괴하는 독재적인 비정함이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안락사의 문제가 끊임없이 논의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랑하던 가족의 시신을 병동의 냉장고 속에 안치해 둬야하고, 며칠 전까지 서로 몸을 비비고 만지던 친지의 몸을 차가운 땅 속에 매장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죽음을 견디기 어렵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죽음의 두려움은 죽음이후의 생명현실에 대해서 우리는 전혀 무지한 상태로 모른다는 사실이며, 삶의 시간을 한줌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고 자신할 만한 당당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 있다.

2. 죽음의 인식과 이해

 

죽음인식은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을 인식하는데서 부터 출발한다. 우주의 모든 것은 생멸을 하는 존재이다. 모양이 있는 것은 반드시 소멸하게 되어 있다. 태어났다는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지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이것을 실제적으로 인식하는 삶이 바로 죽음인식의 출발이다. 죽음인식은 자신이 영원한 생명인 듯 착각하는 무지를 깨는 데에 있다. 죽음의 인식을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알아차릴 때 삶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지고 자신도 더욱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어 있다. 만약 인간이 영원불멸의 존재라면 세상은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다. 삶이란 그저 영위하는 것일 뿐 그 가치는 형편없어지게 된다. 인간의 유한성은 비록 죽음이라는 피하고 싶은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지만 실제로 삶의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죽음은 예전과 같이 의사가 판정하는 전유물이 아니다. 죽음의 상태가 모호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음을 육체와 정신의 두 분야로 나누어 판단할 때 의사, 법률가, 성직자, 보호자 등 집단적 판단이 동원되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죽음은 육체적 죽음과 정신적 죽음을 모두 말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안락사라든가 존엄사 같은 새로운 죽음의 법률적 개념을 탄생시켰다.

 

과거와 다르게 죽음의 문제는 새로운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다. 현대의 죽음은 과거의 죽음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다. 과거에는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고, 건강에 대한 무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또한 신생아의 사망률이 현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높았다. 예전의 어머니들은 아이를 여러 명 낳아서 그 중에 한두 명은 이런 저런 이유로 생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지만 현대의 우리 세대에서는 한 두 명의 아이만 낳아서 키우는 게 기본이 되어있다. 그만큼 신생아의 사망률이 현저히 낮아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사회는 무기의 발달로 대량살상이 가능해 졌고, 지구의 온난화와 더불어 새로운 지구생태계의 변화는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한다.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동남아와 일본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생명을 잃기도 했다. 자동차의 증가로 차량사고로 인한 죽음도 늘어나고 있으며, 물질의 발달을 정신이 따라가지 못한 결과,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을 만들어 자살로 인한 사망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의학의 발달은 생명을 끊임없이 연장시켜 노령화사회와 저 출산의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죽음이후에도 매장문화가 화장 문화로 바뀌고 납골당을 비롯한 수목장등의 새로운 장례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또한 문화에 따라 세계 각 국에는 다양한 장례문화가 존재한다. 그러한 모든 죽음에 관련된 일들을 누구도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 죽음에 마주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다른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사는 우리들의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현실에 있어서 죽음의 이해는 무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이 노년에 이르면 죽음의 문화가 얼마나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 자신의 죽음이 얼마나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지 느끼게 된다. 인간은 소중하게 태어나서 삶을 살지만, 죽음에 이르렀을 때도 품위 있게 죽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죽음문화의 현실이 어떤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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